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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5]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경북 문경시 상초리 문경새재도립공원(聞慶鳥嶺道立公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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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 도립공원은 예로부터 영남과 한양을 잇는 영남대로상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갯길인 문경새재를 중심으로 백두대간의 주흘산과 조령산 일대의 원시림이 자연그대로
보존 된 청정 휴식공간입니다.
백두대간(白頭大幹)의 조령산(鳥嶺山) 마루를 넘는 이 문경새재는 예로부터 한강과 낙동강유역을 잇는 영남대로상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로 사회 문화 경제의 유통과
국방상의 요충지였습니다.

새재(鳥嶺)는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풀(억새)이 우거진 고개, 또는 하늘재(麻骨嶺)와 이우리재(伊火峴) 사이의 "새(사이)재", 새(新)로 된 고개의 "새(新)재" 등의
뜻이라고도 합니다.
임진왜란 뒤에 이곳에 3개(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의 관문(사적 제 147호)을 설치하여 국방의 요새로 삼았으며 많은 문화 유적과 옛 선비들이 청운의 뜻을 품고 넘나들던
장원급제길, 책바위, 교귀정, 원터등 선현들의 발자취가 뚜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장렬히 순국하신 신길원 현감의 충절과 이곳 천연의 요새를 이용하지 못하고 달래강에 배수진을 친 신립장군의 애환이 함께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외에도 고려사를 재조명하는 세계최대의 KBS 드라마촬영장을 비롯하여 민속박물관과 유스호스텔, 사계절 썰매장, 자연생태공원이 있으며 주변에는 문경온천, 석탄박물관,
관광사격장, 활공랜드등 종합 휴양시설이 있습니다.

주흘관(主屹關)으로 불리는 영남제1관(嶺南第1關)은 숙종 34년(1708)에 남쪽의 적을 막기 위해 설관(設關)하였으며 팔작(八作) 지붕으로 홍예문은 높이가 3.6m, 폭 3.4m,
길이 5.4m로 3개의 관문 중 옛 모습을 가장 잘 지니고 있습니다.
조곡관(鳥谷關)으로 불리는 영남제2관(嶺南第2關)은 선조 27년(1594)에 충주인 신충원이 축성한 곳으로 중성(中城)이라고도 하며 1907년에 훼손되어 1975년에 복원한
문루를 옛 이름 조동문(鳥東門)이라 하지 않고 조곡관(鳥谷關)이라 개칭하였습니다.

조령관(鳥嶺關)으로 불리는 영남제3관(嶺南第3關)은 새재 정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의 적을 막기 위하여 선조 초에 쌓고 숙종 34년(1708) 때 중창하였으며 1907년에
훼손되어 불탄 것을 1976년도에 홍예문 및 석성 135m와 누각을 복원했습니다.
문경새재의 주변으로 연결된 우리 나라의 큰 산줄기인 백두대간(白頭大幹)이 태백산, 소백산을 거쳐 경상도와 충청도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문경 각서리에서 괴산군
연풍으로 통하는 소로인 이화령이 1925년 신작로로 개척되어 국도3호선이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1978~1979년 확장 포장된 이우리재(이화령)와 가은에서 충북 괴산으로 연결된 불한령, 문경군 농암에서 충북 삼송으로 다니던 고모령 등이 있어 신라와 고구려,
신라와 백제의 경계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이곳이 영남에서 한양으로 통하는 조선시대의 가장 큰길(嶺南大路)이었던 곳이며 옛날의 유지(遺址)로는 원터, 교귀정, 봉수터, 성터, 대궐터 등이 남아 있습니다.

문경새재의 주변으로 연결된 우리 나라의 큰 산줄기인 백두대간(白頭大幹)이 태백산, 소백산을 거쳐 경상도와 충청도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문경 각서리에서 괴산군
연풍으로 통하는 소로인 이화령이 1925년 신작로로 개척되어 국도3호선이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1978~1979년 확장 포장된 이우리재(이화령)와 가은에서 충북 괴산으로 연결된 불한령, 문경군 농암에서 충북 삼송으로 다니던 고모령 등이 있어 신라와 고구려,
신라와 백제의 경계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이곳이 영남에서 한양으로 통하는 조선시대의 가장 큰길(嶺南大路)이었던 곳이며 옛날의 유지(遺址)로는 원터, 교귀정, 봉수터, 성터, 대궐터 등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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