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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기업은 있는가 : I. 두려움으로 선택한 자유

1. 7월의 전쟁

6월의 마지막 날, 교환자금 마련에 느낌이 불안했던 이 사장은 결국 아침에 출근길에 싸움하듯 뺏어온 부인의 적금통장을 자금 담당 차장에게 내어 주었습니다.
오늘도 교환자금 마련에 진저리치게 하루를 마감한 이 사장은 불안이 안개처럼 휘감기는 사무실에서 혼자 밤늦도록 남아 다음달 자금 예상을 짚어봅니다.

부가가치세 뿐만 아니라, 지난 결산 년도의 법인세, 특별부가세 등의 체납으로 세무서에서 공장을 가압류 했다는 경리 과장의 보고에 이 사장은 더욱 절망감에 빠져 듭니다.
한 달 이상을 뛰어 다니며 겨우 승인을 얻은 추가 보증서 발급 약속도 공장 압류와 대출금 이자 연체로 인해 더 이상 부탁하기 어려울 것 같고 영업부 직원들에게 숨넘어가게 수금을 다그쳐도 신규 수주는 물론 미수금 회수도 부진하기만 합니다.

이런 어려운 날들이 보름정도 지나면서 회사 직원들의 분위기와 거래처 및 은행의 불안한 동정이 한 걸음씩 조여 오고 있음을 감지한 이 사장은 회사의 돌파구를 다각적으로 검토해 봤으나 별 뚜렷한 해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결국엔 대책없는 부도로 난장판으로 변해 버릴 최악의 상태를 수습하기 위하여 회사 간부들에게 결심을 전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전 간부를 서울 사무실로 모이도록 했습니다.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한 분위기에서 이 사장은 한계에 이른 자금 사정과 대책없는 직원 급여의 체불, 영업환경의 악화로 인한 매출하락에 대한 최종 업무처리 방침을 간부들에게 당부하였습니다.

경리 담당부서는 소액거래처의 결제자금과 직원들의 급여는 일부라도 정리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특히 회사의 중요 장부, 서류 등이 혼란 중에 유실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도록 했습니다.
공장장에게는 생산부 직원들을 독려하여 원부자재 현황을 점검하여 반제품 상태로 공정이 마감되지 않도록 하고, 영업부서는 미수금 회수에 전력을 다하도록 하였으며, 믿을만한 기계 유통업자를 수배하여 기계를 긴급 처분하여 긴급자금을 확보하도록 하였습니다.

7월말 들어 거래은행 당좌계에서 걸려 온 전화에 입금이 어렵다는 대답만을 남긴 채 직원들이 모여 앉은 회의실로 향한 이 사장은 기계를 헐값에 처분한 마지막 월급을 참담한 마음으로 직원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만성적인 자금부족을 초래한 비주력 분야에 대한 무리한 투자와 실패한 제품 개발 실패에 대한 회한을 토로하면서 직원들의 송별을 뒤로 하고 이 사장은 자신의 공장을 쓸쓸히 떠났습니다.

2. 출발을 위한 탈출

은행을 퇴직하고 같이 일해 보자는 친구의 우정어린 제의도 고맙고 회사의 규모도 적절하여 친구의 전자회사에서 새로운 사회 경험을 시작하였습니다.
한 주일 정도 시간을 보내면서 회사 분위기가 어딘가 불안정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적응이 아직 덜 되어서 그렇겠지라는 생각에 마음을 다독거렸습니다.
그러나 열악한 식당 환경과 여사원 기숙사의 도배만이라도 개선해 주자는 나의 제안에 L사장은 생산부 기능공들의 관리방법은 따로 있다며 무관심으로 일관했습니다.

또한 5공 정권 말기의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속에 노동조합의 요구사항에 사전 대응하기 위해 직원들의 몇 가지 요구 사항만은 즉각 시행하자고 건의했지만 그 또한 받아 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노사분규로 크게 홍역을 치른 나는 노사분규 주동자를 당국에 추가로 고발하라는 회사의 지시에 따를 수 없어 5개월만에 회사를 그만 두었습니다.

봉제업으로 시작하여 제품의 품질을 인정 받은 H사는 전국에 직영점과 대리점을 200여개 정도 가진 종합 의류메이커로서 성장 기반을 준비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외형상의 규모가 커져가자 늘어나는 재고부담과 고도의 대처능력, 순발력 있는 경영판단을 요하는 의류산업 특유의 시장 위험성에 노출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연속 3년에 걸친 이상 난동에 의류업계는 전반적으로 극심한 매출부진과 자금 압박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포근한 날씨로 인해 매출 부진이 계속되면서 반품을 수납하는 재고 창고가 모자랄 정도였으며 이로 인해 극심한 자금 압박이 계속되었습니다.

더구나 5월경부터 각 대리점에 출고를 시작한 신발 제품은 기술과 자금 부족으로 처음부터 경쟁력을 잃었고 일부 판매 진행된 제품도 대부분이 불량으로 반품 소동에 휘말렸습니다.
결국 3차 부도일에 결제자금을 입금하지 못한 채 H사의 사장은 서러운 눈물을 흘려야만 했습니다.

3. 창업이라는 인생극

은행을 퇴직하고 겪은 약 2년간의 중소기업 현장 경험은 기업을 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느낄 수 있는 머리가 돌도록 어지럽고 숨가쁜 나날이었습니다.
J사장과는 은행 업무로 서로 알게 되어 지난 10여 년간 터놓고 지내는 전 직장의 고객이자 친구로 가족들과도 잦은 내왕이 생기면서 휴가도 두 가족이 함께 다닐 정도로 허물없는 사이였습니다.
이러한 J사장의 금형 사업에 필요한 설비를 만드는 기계공장을 설립하자는 사업 제안은 엄청난 욕망으로 나를 흔들었습니다.

그래 한 번 해 보는 거다, 두려움이 없는 용기는 없다는 생각으로 우선 J사장의 사무실 한 켠을 빌어 사업계획을 점검하면서 D기술금융, S개발금융등으로부터 상당한 금액의 투자 승인까지 받아내었습니다.
이어서 공장과 설비, 직원을 확보하고 그해 여름까지 1호기를 생산한다는 목표로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지만 신설회사의 제품개발은 의욕과 조바심만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경영자의 공장 운영에 대한 경험과 전문성 부족은 경영 전 분야에 낭비와 통제력 부족을 불러왔고 급조된 직원들의 엉성한 팀웍은 마음만 앞설 뿐, 개발은 계속 지연되어 1호기의 생산은 늦어졌습니다.
다행히 그 해 여름을 모두가 정신없이 보내고 있던 9월 하순경, 부산에 소재하는 금형 업체로부터 드디어 1호기 계약을 받아 왔습니다.
제작이 끝난 1호기를 기쁜 마음으로 부산으로 출고한지 일 주일쯤 되던 날, 부산의 구매처로부터 기계가 말썽을 부려 작업을 할 수 없으니 빨리 A/S를 해 달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A/S 담당직원들이 서둘러 부산에 파견되어 여러 날 체재하면서도 불량 원인을 찾아내지 못하고 지쳐 있을 즈음 나는 부산의 구매처의 공장을 직접 방문하였습니다.
번들거리던 모습으로 공장에서 출고된 1호기는 걸레같이 분해되어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였으며 현지 출장 A/S 담당 직원들도 패잔병의 모습이었습다.
나는 직원들의 처진 어깨를 추스리면서 구매처 직원들에게 백배사과와 함께 그간의 작업 손해분에 대해서는 보상을 약속하고 고철이 다 되어버린 1호기를 싣고 밤늦은 부산 거리를 도망치듯 빠져 나왔습니다.

4. 사장, 해볼 만한 직업입니까?

경영자가 된다는 기회의 선택은 한 번뿐인 자기 인생으로부터 성장과 변화를 선택할 수 있는 방법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 세상은 가만히 앉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망설이고만 있는 사람에게 기회와 성공의 열매를 따 먹게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누구도 어설픈 자신감으로 기업경영의 성공을 보장받을 수 없으며 실패에 대한 착실한 반성 없이는 한 걸음도 더 나아갈 수 없습니다.

검증되지 않은 창업의지, 비능률적인 회사의 경영, 유연성의 결여, 독자적인 기술부족, 창의성과 전문성 부족, 체면위주의 경영, 안 된다는 말을 쉽게 함, 어정쩡한 부지런함 등 개인의 판단 착오와 고집뿐인 성실은 오히려 죄악입니다.
오만과 무사 안일한 경영의 결과가 치러야 하는 사회적 대가나 개인적 희생은 그 뿌리가 너무나 깊어 쉽게 치유되지 않는 가슴 속의 불치병으로 남기 마련입니다.

경영자는 잠시도 여유를 주지 않는 한계적 판단과 다양한 걱정거리로부터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는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따라서 성격상의 독단에 이르기 쉽고 경영이 어렵거나 상당한 난관에 봉착되면 의외로 쉽게 허물어지는 처지일 수 밖에 없습니다.
경영자로서의 인생은 외롭고 고통스러운 길이며 성공과 실패가 윤회처럼 반복하는 아주 먼 길인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5. 잊혀진다는 고통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지만, 우리 사회는 실패에 대하여 차갑고 냉혹하여 오히려 실패는 파멸의 지름길이라는 인식이 보다 실감나는 현실적인 상황입니다.
과정의 선의는 평가의 가치도 없으며 실패한 경영자는 파렴치한 죄인이고 그의 실패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는 엉터리로 매도되어 아주 빨리 무시되고 잊혀져 버립니다.

실패한 경영자에게 경제적인 어려움보다 더욱 견디기 어려운 것은 가까웠던 주위 사람으로부터 찾아오는 소외와 배신일 것입니다.
배신은 더 많은 기회와 배려를 하였던 직원들이나 평소에 조금은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겪게 되어 상처 받은 가슴을 더욱 저미게 합니다.

경영의 주체적 책임자인 경영자에게 사회적 혼란과 불신을 초래하게 한 원죄적 책임은 당연히 수용하여야 할 사항입니다.
또한 도산 경영주라는 낙인이 부도덕의 덩어리로 평가되는 극도의 소외와 편견으로부터 해방되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간단하게 정리된 내용이므로 원본의 자세한 내용은 도서출판 문지사의 "사장, 해볼 만한 직업입니까?"을 구독하시기 바랍니다.